1980~90년대는 일본 추리소설이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확보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시기입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부활, 사회파 추리의 확장, 여성 작가들의 등장, 그리고 청춘 미스터리의 대중화까지 — 이 시기 일본 추리문학은 다양한 장르적 실험과 스타일의 확산을 통해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그렇다면 그 중심에는 어떤 작가들이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80~90년대 일본 추리 열풍을 이끈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남긴 문학적 유산을 조명해보겠습니다.
1. 신본격 추리의 부활을 알린 시마다 소지
1981년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시마다 소지는 80년대 초반 일본 추리소설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이 작품은 고전 퍼즐 추리의 논리성과 현대적인 서사를 결합하며, ‘신본격 추리’라는 새로운 흐름의 시발점이 됩니다.
그는 이후 본격 미스터리의 가치와 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후배 작가들을 적극 발굴하며 신본격 붐을 이끕니다. ‘탐정은 작가의 대리자’, ‘정보의 공정성’, ‘트릭의 윤리’라는 철학적 기준을 도입한 그의 영향력은 이후 수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마다 소지는 단순한 히트 작가가 아니라, 장르의 구조와 문법을 재정비한 설계자로 평가되며, 80년대 추리소설 르네상스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았습니다.
2. 아야츠지 유키토와 ‘관 시리즈’의 신드롬
시마다 소지의 뒤를 이어 등장한 아야츠지 유키토는 1987년 『십각관의 살인』을 발표하며 본격 추리 부활의 흐름을 이어갑니다. 그는 ‘관 시리즈’라는 고딕적 분위기와 치밀한 트릭이 결합된 연작을 통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십각관의 살인』은 클로즈드 서클 구조, 제한된 등장인물, 시점의 교묘한 조작 등을 통해 고전 추리소설의 미덕을 재해석했으며, 이 작품은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신본격 붐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습니다.
그는 시마다 소지와 함께 ‘신본격 1세대’로 분류되며, 이후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 결성에 참여하여 장르 부흥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미스터리는 다시 태어났다”는 확신을 심어준 인물입니다.
3. 사회파 미스터리의 확장과 여성 작가의 대두
같은 시기, 나쓰키 시즈코와 미야베 미유키는 기존의 ‘트릭 중심’ 추리소설과 다른 흐름을 제시합니다. 이들은 범죄 자체보다 범죄가 일어나기까지의 사회 구조, 인간관계, 심리적 단절에 집중하며 ‘사회파 + 심리 미스터리’ 장르를 발전시킵니다.
나쓰키 시즈코는 『W의 비극』으로 여성 중심의 서사를 본격적으로 이끌었고,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 『모방범』 등을 통해 피해자 중심의 시선, 현대 일본 사회의 병리학적 구조를 섬세하게 풀어냈습니다.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의 등장은 일본 추리소설의 감성적 지평을 확장시켰으며, 이후 등장할 수많은 심리 미스터리 작가들의 길을 닦았습니다. 감정과 구조, 현실성이 결합된 이들 작품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4. 청춘 미스터리와 캐릭터물의 대중화
한편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추리소설은 ‘가볍고 빠르며 공감되는’ 청춘 미스터리의 흐름도 확대됩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니시오 이신, 오리하라 이치 등의 작가들은 개성 강한 탐정 캐릭터, 심리 중심 전개, 감각적인 문체로 새로운 세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들은 본격 추리의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캐릭터 중심의 서사와 팝컬처적 감성을 결합해 미스터리를 일상 속 장르로 끌어내렸습니다. 이는 이후 라이트 노벨과 서브컬처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청춘 미스터리는 애니메이션, 영화 등 2차 콘텐츠화에도 적합해 대중성과 확장성이 높았으며, 80~90년대 추리소설 붐을 보다 폭넓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1980~90년대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일본 추리소설이 다층적인 장르로 진화하고 분화되는 과도기였습니다. 트릭, 사회, 심리, 청춘, 캐릭터… 이 모든 것을 이끌어낸 작가들의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 문학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